<일간 이슬아> 벼룩의 읽는 취향



우리 좀 봐.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서 똑같이 따라 말했어.
그러게. 우리 좀 봐.
처음 가본 장소에서 처음 맛보는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처음 보는 풍경을 내다보는 동안 우리는 잠시 서로가 새삼스러워졌어. 우리가 모르는 우리였기 때문에 어색했어. 그런 우리를 잠깐 3인칭으로 보자는 제안이었지. 우습고 촌스러운 우리를 좀 보라고. 이런 식으로 준비된 행복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서툰지를.
 여행지에서 행복해지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지. 미리 돈을 지불했으니까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잖아. 적어도 들인 돈만큼은 행복해야 할 것 같아서 , 망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초조하잖아. 한 번도 안 배워본 춤인데도 좋은 합으로 멋지게 같이 춰야 할 것 같잖아.
(...)

너의 모든 기쁨과 모든 슬픔, 그리고 그사이 모든 결의 감정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던 몇 년이 있었어. 헤어지는 건 그런 것들을 딱 관두는 일인데 그걸 관두는 나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던 몇 개월도 있었네. 제일 열심히 했던 일이 내 손을 떠난다니 이상하고 슬펐어.
( ....)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있는데 마음이 없어서, 혹은 마음이 있긴 있는데 엇갈려서, 우리는 행복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자주 실패해. 내 맘이 당신 맘과 다르고, 자꾸 눈을 피하고, 우린 서로 모르고, 그게 제일 그렇지 뭐. 그 밖에 수많은 이유들로 쉽게 언해피 아워를 보내.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이 얼마나 우리 손에 잘 안 붙잡히는지 붙잡앗다가도 어느새 달아나 있고 의도치 않은순간에 습격해서 놀래키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해피같은 말에 딱히 집중하지 않게된 지 오래야. 이제는 그저 아워를 생각해. 섣부른 기대와 실망 없이 의젓하게 시간을 맞이하고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평생 못 될 것 같지만 말야. 

2018.03.28 水.

--<일간 이슬아 >112쪽,,  23. 해피 아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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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를 알게 된 건 중간 유통망 없이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파격적인 방식이 회자 되어서 였다.  월 구독료 1만원을 받고 평일 동안 매일 한 편의 수필을 구독자의 메일로 직접 발송하는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작가는 밝힌다.  구독자를 모집하는 일도  작가 혼자 다 해냈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만든 <일간 이슬아> 역시 작가의 독립출판이다.


작가의 일상과 기억과 주변사람들을 더듬으며 나도 같이 낄낄대고, 슬프고,  미소짓기도 하고,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내가 하는 고민들을  이슬아도 하고 있을 때 그 막연하고 우연하게 만들어진 연결됨에 위로를 받는다.
반짝반짝 하는 것 같은 작가의 문장을 보고 있자니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 할 때 몹시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안 읽고 내팽개칠까봐, 책이나 선물하는 따분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반대로  소중한 책이 무용하게 되는 지경이 될까봐..
아니 에르노의 글들은 내 책장에 두었다가 종종 꺼내보고 싶다면, 이슬아의 글들은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준다.
받는 즐거움과  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픽션이냐 아니면 논픽션이냐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와 내 주변과 내 시선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게 논픽션인지는 의문이다. 같은 일을 함께 겪은 사람들도 나와는 다르게 쓰고 가공할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픽션으로 이야기를 완성할 것이다.  (...)
그럼 이렇게 대답해. ...ㄴ픽션작가라고.. (...)
저는...응픽션 작가에요...
라고 대답해버린다. 
-166쪽, 




"슬아는참...자유스럽구나!
하나도 안 그래요, 라고 말하며 나는 웃었다. 자유라니. 나랑은 정말 안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햇다 .성욕으로부터, 임신의 가능성으로부터, 연애의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경솔한 섹스를 해버리고 싶은 충동으로부터, 돈으로부터, 그밖에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안자유로워서 받은 시술이었다.
(...) 허리와 배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가임 능력이 한동안 차단된 게 다행처럼 느껴졌다. 안전하게 확보한 미래 같았다. 미래 중에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206쪽, 49. 미래로 보내는 돈 (상) 중에서



'절대' 옆에는   무슨 말을 가져온들 어쩐지 말도 안 되는 느낌이 든다. 절대 반지, 절대 자유, 절대 권력, 절대 불안, 절대 찬성, 절대 반대, 절대 진리, 절대 안 돼, 절대 돼... 완벽한 도달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알면서도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건 과정에 관한 말들이 아닐까. 입밖으로 내면서 의지를 가지게 하는 여러 단어들. 이를 테면 '사랑' 같은 말들. 혹은 '주님'도  그런 말일지 모른다. 뭔지 모를 그 상태에 가까워지기 위해애쓰게 되는 말들.
-258쪽, 49. 절대 안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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