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벼룩 간이 배 밖에 나온 날


넷플릭스에서 첼시쇼를 보다가 너한테 전화가 왔어.
'치킨 먹을래?'

나는 닭고기를 안먹을 거지만 배도 하나도 안고프지만 집 밖에 나가고 싶어서 일단 나왔어.
오랜만에 본 너는 눈밑이 어둡고, 광대 위에 기미가 더 짙어졌어.

삐뚤삐뚤한 아이라이너 위에 번떡이는 펄이 자글자글  눈 두덩이에 엎질러진 것 마냥 얹어있었어.
눈을 깜빡일 때 마다 빤짝이가 떨어질 것 만 같았어.

허니까망베르 파니니를 먹으면서 너는 너무 달다고 투덜거렸어.  허니니까 달지...


사건 . 정치. 실시간 검색어. 뉴스를 봐도 신나는 일 하나 없는 요즘 이었어.
5월은 이제 계절의 여왕이 아니야. 핫여름이 삼켜버렸거든.
그러다가  봉주르노~감독의 기생충 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나는 정말 기뻤어.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너는 의아해 했어.
그러게...
드디어 극장에 가고 싶게 만든 영화가 나왔다는게 요즘들어 나의 가장 설레는 일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짧은 예고편 하나와 포스터를  봤어. 
'기생충'이라는 글자 디자인이 정말 기생충 같았어.
못사는 사람들이 기생충처럼 잘 사는 사람에 들러붙었는데, 알고 보니 잘 사는 사람들이 더 기생충같더라는 이야기 일 거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봤어.

너는 심각하고 여운이 짙은 영화가 싫다고 했어. 영화를 보는 동안은 딴 생각이 안나는 신나는 액션영화가 영화의 본분이라고 했어.
내가 늘 진지하고 난해한 영화를 좋아하는 게 사는게 편해서라고 고민거리가 없으니까 영화에서 머리아프게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 했어.

다른 사람 앞에서라면 나는 가르치려들듯이 조목조목 말하겠지만, 네 앞에서는 그냥 입을 다물어. 논쟁하고 싶지 않아서.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너랑은 대화가 안된다는 걸 알아. 너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만나고 밥을먹고 시시콜콜한 안부를 묻고, 쓸데없이 왜 묻지 하면서도 응답을 하지.
우리는 취향이 다른게 아니라 반대지. 니가 즐겨듣는 음악과 책은 나는 못 들어주겠거나 못 읽어줄 그런 것들이었어.
내가 듣고 읽고 보는 것들은 너는 늘 지루해서 못보겠다고 했고.
우리는 어쩜 이렇게 다를까.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싸웠고 미워했는데 지금은 싸움을 피하게 되었고, 서로를  안됐다고 생각하는지 챙기는 사이가 된 것 같아.

마지막 헤어질 때 너는 나한테 필라테스 관뒀냐며 왜이리 살이 쪘냐고 했어.
여전히 필라테스를 하는지가 궁금했던 걸까? 살쪄보이는 걸 지적하고 싶었던 걸까.
운동은 관두지 않았고 많이 먹어서 살이 찐거라고 말하면서 잘가라고 했어.
'뚱뚱하다고 놀려대도 내가 날씬해지진 않는다'는 대사가 생각났어.  아까 첼시쇼에서 게스트가 인용한 말이었어.

그리고 일기를 써야겠다고, 언짢아 질까봐 하지않은 말들을 써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일기가 써지지 않네.

나는 솔직한 말들이 싫어. 
조롱하는 말들도 싫어.
내가 싫어하는 말들을 하고 있는 나를 들키는 일도 싫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싫은 게 많은 것도 싫어.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