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 에리카종 벼룩의 읽는 취향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117명의 정신분석 전문의가 탑승하고 있었다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는가? 여자들이 책을 쓰기 전까지 세상에는 오직 한쪽의 이야기만이 존재했는데, 역사를 통틀어 모든 책들은 정액으로 쓰여졌다. 생리혈이 아니고.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채털리 부인의 오르가슴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도대체 나는 어딘가 잘못된 건가 의문을 품었다. 채털리 부인이 사실은 남자라는 사실을 그땐 왜 몰랐는지. 채털리 부인은 사실 D.H.로런스 였다."
-54쪽

"구원받고 싶은 사람처럼 보여요. 당신은 구원을 요청하고 있어요. 내가 대단한 정신분석가라도 되는 양 날 보면서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잖아요. 당신 같은 여잔 평생 선생님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한테 너무 의존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되죠. 아니면 그 사람이 자기 약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를 경멸하거나. 당신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하며서 머릿속으로 기록을하죠. 책을 쓰거나 사례를 분석하듯 사람들을 놓고 공상을 해요. 나도 그 게임 알아요.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겐 정보를 수집하는 거라고 말하죠. 인간의 본성을ㄹ 연구한다고도 말하고요. 항상 예술이 삶보다 우선이니까. 물론 그거야말로 청교도식 헛소리이지만. 하지만 당신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어요. 나하고 둘이 빠져나와서 이렇게 돌아다닌다고, 자신이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그것 역시 당신의 직업병일 뿐이에요.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도 나에 관한 글을 쓸 궁리만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깐 당신한테 이 모든 건 결국 일의 연장일 뿐이죠. 안 그래요? 나하고 섹스하고 그걸 시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아주 영리한 방법이죠. 그런  식으로 우아하게 자신을 속이다니."
-166쪽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전전하지 않는 여자. 남자가 있건 없건 완전함을 느끼는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왜 매번 미덥지 않은 남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가? 보라. 시몬 드 보브아르 조차 '사르트르는 어떻게 생각할까'를 항상 염두에 두지 않았던가? ...그 외의 여성 작가들, 여성 화가들 대부분은 수줍었고 위축되었으며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삶에 있어서는 소심했고 오직 예술 세계에서만 대범했다. 에밀리 디킨슨이 그랬고 브론테자매가 그랬으며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고 카슨 캐컬러스가 그랬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공작새를 키우며 엄마와 살아다. 실비아 플라스는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서 전설ㄹ이 되었다. 조지아 오키프만이 사막에 홀로 남았고 진정한 생존자였다. 참으로 대단한 집단 아닌가. 그들은 자신에게 혹독했고, 자살했으며 기이했다. (...) 우리가 숭배하는 모든 여성들은 노처녀이거나 자살했다. 과연 그게 우리가 가야할 길인가?"
-193쪽

"그래서 나는 남자에게서 여자를 배웠다. 나는 남성 작가의 눈으로 여성을 보았다. 물론 나는 그들을 남성 작가들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을작가로, 권위자로, 신처럼모든 걸 알고 있는 자,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
 당연히 나는 그들이 말하는 모든 걸 믿었다. 비록 그게 나의 열등함을 의미할지라도. 나는 채털리 부인으로 위장한 D.H로런스로부터 오르가슴을 배웠다. (...)나는쇼로부터 여자는결코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배웠다.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여자는 신앙심이 없음을 배웠다. 스위프트와 포프로부터 여자는 너무 ㅣㄴ앙심이 강해서 결코 이성적일 수 없다고 배웠다. 포크너로부터 여자는 대지의 어머니이며 달과 조수와 수확과 한몸이라고 배웠다. 프로이트로부터여자들은 이세상에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한 가지, 즉 페니스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슈퍼에고가 부족하고 항상 '불완전한'존재 라고 배웠다."
-293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어쩌자고 이곳에 와서 쉬겠다는 생각을 했냐고. 나는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문득 내가 인간 탁구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으로부터 떠나려고 남자를 찾고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찾는다. 집으로 돌아오는순간 다시 떠나고 싶고 떠나는 순간 다시 집에 돌아오고 싶다. 도대체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존재론적 딜레마? 여성 억압? 인간의 조건? 전에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도 견디기 힘들다. 나는 나 자신으 양가감정의 그물에 반복적으로 걸려들고 잇었다. 바닥을 치는 순간 다신 튀어오르고 싶다. 그래서 어쩔 거냐고? 그저 웃는다. 웃을 때면 가슴이 아프다. 비록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437

"(...)9월과 10월은 우울하고 따분했다. 나는 이혼남, 마마보이, 신경증 환자, 정신병자, 그리고 정신분석의들과 데이트를 했다. 나는 그들을 심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해서 피아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그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1월이 되엇고 마치 나의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베넷 윙이 내 삶에 흘러들어왔다. (...)그는 구원자이자 정신과의사였다. 나는 유럽에서 침대에 쓰러졌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결혼에 쓰러졌다. 푹신한 침대같았지만 그 밑에 못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봐, 당신은 사랑을 원하고, 강렬함을 원하고, 느낌을 원하고, 친밀함을 원해. 그런데 정작 뭐에 안주하는지 알아? 고통에 안주해. 적어도 고통만큼은강렬하니까.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사랑해. 치유되는 걸 원치 않아."
-465


"이봐, 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주디하고 섹스한 것뿐이야. 썩 훌륭한 커피는 아니었다고."
"그럼 왜 굳이 마셨어?"
"왜 굳이 안 마셔?"
-481

"당신이야말로 개소리하지 마. 내가 원하는 게 당신이 원하는 것보다 조금 더 수준이 높은 것일 뿐이야. 당신 게임이 뭔지 이제 알겠어. 당신의 즉흥성과 실조주의엔 동의하지만 이건 즉흥성이 아니야. 절망이지. (...)이건 단지 절망일뿐이라고 자유의 가면을 쓴 우울일 분이야. 별로 유쾌하지도 않아. 한심할 뿐이라고. 이 여행 자체도 한심해.
-482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남자. 그 둘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이 사냥꾼이자 원시인이었을 때, 여자들은 평생 임신을 걱정하거나 아기를 낳다가 죽을까봐 걱정하며 살았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일이  일어났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차갑고 반응이 없고 뻣뻣하다고 불평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음탕해지기를 원했다. 거칠어지기를 원했다. 이제 여자들이 음탕해지고 거칠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던가. 남자들이 시들어버렸다.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평생 그 누구도 ,에이드리언을 원했던 만큼 간절히 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욕구의 강렬함이 그의 욕구를 잦아들게 만들었ㄷ라. 내 열정을 보여줄수록 그는 더 차갑게 식어갔다. 내가 그의 곁에 머물기 위해 만흔 걸 버릴수록 그는 내 곁에 머물기 위해 점점 덜 버렸다.  정말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던가? 정말 이 모든 게  엄마가 내게 말해주었던 '여자는 자고로 비싸게 굴어야 해'로 집약되는 것일까? (...)끝도 없이 번갈아 찾아오는 이 상실감은, 욕망과 무관심, 무관심과 욕망의 반복되는 주기는 과연 무엇을의미하는가?"
-510

<그리스인 조르바> 벼룩의 읽는 취향

'항구 도시 피라에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세번째 읽었다. 
책장을 비워내기 전에 한번 더 읽어야지 벼르던 차에 읽게 되었다.


맨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대학원에 다니던 김여사가 혼자서 인도여행을 떠났던 때였고, 혼자 남겨진 나는 뭔가 굉장히 외로웠고 서러웠고 분노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그 때 김여사 책장에 꽂혀있던 두꺼운 검정색 양장본 책이 눈에 띄었다. 
읽다가  너무나 짐승스러운 조르바의 거친 말투때문에 여러차례 짜증이 났었다.
이 책은 절대 청소년권장도서가 되어선 안돼. 이 아재,, 아니 이 할배 말하는 본새가 아주 상스러워 . 
불쾌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에 맘이 싱숭생숭 했다.

두 번째로 소설을 읽을 즈음에  낯선 사회생활에 적응할 때 라서 그랬는지  눈치도 안보고 하고싶은 대로 하는 조르바를 부러워했다. 
새로운 업무로 이직한 곳에서 만난  조아무개는 기분이 좋으면 양팔을 벌려 흔들어대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시늉같은 걸 했는데, '냉소와 사랑이 동시에 느껴지는 웃음'을 가진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녀를 조르바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세번째 읽으니 
저항하는 삶이 피곤해 순응하는 삶을  꿈꿔보는 돈많은 젊은 먹물 남자의 조르바 크루즈. 여행기로 읽힌다.

코로나시대에  적합한  조르바로 떠나는 여행!
자기계발에 지친 현대인이여 욕망이 이끄는 삶을 사는 조르바로 떠납시다.

자기검열.  타인의 시선. 성인지감수성  따위는 내던져 버리는,
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영혼이 있으니 조르바 할배다.

현대인의 시선으론,  그는  일상이 일탈이다. 
내 눈에  보기엔 그 지경에 이른 방탕한 대책없는 할배인데, 작가의 눈에는 그 경지에 이른 해탈한 자인 것이다.
문명인이 꿈꾸는 야만인에 대한 동경 같은 거. 
코로나 시대의 조르바라면 절대 마스크 따위는 쓰지 않을 부류다.  
마스크도 안쓰고 떠들며 지나는 인간들을 볼 때마다 어쩜 ...하며 찡그렸는데, 
이젠 조르바같은 놈..이라고 할 생각이다.   그럼 좀더 너그러워 질 수 있을 것 같다.
자유로운 인간.  민족이고, 조국이고,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부류.  그래도 광화문에서 시위같은 건 하지 않을 할배.  
지금을 가장 열심히 사는 동물. 두려울게 아무것도 없는 숫컷. 
신 위에 선 호모사피엔스. 


무지한 인간을 둘로 나눠본다면
다 안다고 착각하는 부류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 가 있을 텐데, 조르바는 후자가 아닐까.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러고 보면 행복이란 얼마나 별거 아닌가 싶다.
(득도해야 할 수 있는)마음을 비워서 행복한게 아니라 비울게 없어서 행복한 거다. 채우기 전에 (욕망이든 욕구든) 해소해 버리는 거다.


그건 마치 내가 여행지에 가서 일상에서는 하지도 않던 소비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쇼핑도 충동적으로 하고 비싼 식당에도 가보고...잠시 계산하기를 멈출 것.  길을 헤메도 만족스럽고, 집시에게 소매치기를 당해도 당연하게 여길 줄도 안다.
왜냐 이 곳은 여행지니까. 잠시 들른 곳이니까.  떠남이 예정된 곳. 그래서 늘 설레고 동경 할 수 있지만 그 곳에서 살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늘 조르바를 꿈꾸지만 조르바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 너무 사는게 힘들면 사는것 보다 죽는게 낫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 때는 조르바를 떠올려 보라. (조르바처럼 살아보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않다.
나는 자유다

 유명한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근사하구나!
나는...
나는 바라는게 너무 많다. 나는 세상에 무서운게 넘쳐난다. 나는 ..
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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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책들, 이윤기 옮김



"두목, 언젠가 내가 사람에게는 저 나름의 천당이 있다고 한 적이 있지요. 당신의 천당은 책이 잔뜩 쌓이고 잉크가 됫병으로 한 병 놓인 방일지도 모르지요. 포도주, 럼, 브랜디 병이 가득한 방을 천당으로 아는 놈, 돈이 잔뜩 있는 곳을 천당으로 아는 놈....가지각색입니다. 내 천당은 이런 곳입니다. 벽에는 예쁜 옷이 걸려 있고, 비누 냄새가 나고 물렁물렁한 침대가 있고, 옆에는 암컷이 하나 누워있는 향긋한 방 말입니다.
  과오란 고백으로 반쯤은 용서된다고 합니다. 그날 나는  밖으로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갈 데가 어디 있어요? 할 일이 뭐 있어요? 두려울 게 뭐 있어요?"
-259쪽


"조르바의 편지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두 가지로(아니, 세 가지로) 망설였다. 화를 내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아니면 인생의 껍질(논리와 도덕과 정직성의 껍질)을 깨고 표면으로 뛰쳐나오려는 이 원시적인 인간에게 그저 감탄만 하고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편리한, 자질구레한 덕성이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만족을 모르는 극히 불쾌하고 위험한 덕성뿐이어서 이런 상태가 그를 극한과 지옥의 나락으로 끊임없이 충동질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면 이 무식한 일꾼은 펜을 무지막지하게 부러뜨린다. 원숭이 껍질을 처음으로 벗긴 원시인처럼, 아니면 위대한 철학자처럼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에 지배 당한다. 조르바는 이들 문제를 목전의 급한 필요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그느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의 신비는?]"
-262쪽


"그때, 어린 나는 하마터면 우물 속으로 뛰어들 뻔했던 것이다. 자라면서 나는 <영원>이라는 말, <사랑>, <희망>, <국가>,<하느님>같은 말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졌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정복하면서 나는 흡사 위험에서 벗어나 무럭무럭 발전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느 ㄴ겨우 말을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런 경력이 있는 내가 2년 전부터는 <부처>라는 말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확신했다. 부처는 최후의 우물, 마지막 심연의 언어이며 영원한 구원의 문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조르바에게 영광이 있을진저, 영원? 확신이 올 때마다 내가 써온 말이 아니던가."
-299쪽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씌어져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이으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부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389쪽

나쓰메 소세키 &lt;풀베개> 벼룩의 읽는 취향

 "밟는 것이 땅이라고 생각하니까 갈라지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머리 위에 받듣 것이 하늘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번개가 관자놀이를 진동시킬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남과 다투지 않으면 낯이 서지 않는다고, 속세가 재촉하기 때문에 불이 난 집에 있는 듯한 고통을 면치 못한다. 동서가 있는 천지에 살며, 이해의 밧줄을 건너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몸에는, 사실상의 연애는 오히려 해가 된다. 눈에 보이는 부(富)는 흙덩이다. 잡는 명(名)과 빼앗는 예(譽)는 약삭빠른 벌이 달콤하게 만드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독침을 남겨 두고 가는 꿀과 같은 것이리라. 소위 낙이라는 것은 사물에 집착하는 데서 생기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포함한다."
-82쪽


"고대 그리스의 조각은 알 수 없으나, 근세 프랑스의 화가가 생명처럼 받드는 나체화를 볼 때마다, 너무나 노골적인 육체미를 극단적으로까지 다 묘사하려고 하는 흔적이 뚜렷하므로, 어딘지 아담한 정취가 모자라는 기분이 오늘까지 나를 괴롭혀왔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만 무언지 품이 낮다고 평했을 뿐, 왜  품이 낮은지는 몰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해답을 얻으려고 번민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던 것이다. 육체를 가리면, 아름다운 것이 감추어진다. 감추지 않으면 천해진다. 요즘의 나체화란 것은 감추지 않아 천박하고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다. 옷을 빼앗긴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까닭인지, 기어코 나체를 의관의 세상에서 밀어내려 한다. 의복을 입는 것이 인간의 떳떳한 생태라는 것을 잊고, 나체의 아름다움에 최고의 미적 가치를 부여하려고 시도한다. 십분으로 족할 것을 십이분으로, 십오분으로 계속 밀고 나가면서 오로지 나체라는 느낌을 강하게 묘사해내려고 한다. 기교가 이런ㄹ극단에 도달했을 때, 사람은 그 극단적인 기교가 보는 사람을 강제하는 것을 천박하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것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려고 초조해할 때, 아름다운 것은 도리어 그 정도가 감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사에 대해서도 차면 기운다는 속담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방심과 천진함은 여유를 나타낸다. 여유는 그림에 있어서, 시에 있어서, 또는 문장에 있어서 필수 조건이다. 현대 예술의 일대 폐단은 소위문명의 조류가 부질없이 예술가들을 구구하게 모든 곳에서 악착같이 집착하게 했다는 점이다. 나체화는 그 좋은 예다.
-102쪽


두 도시 이야기 벼룩의 읽는 취향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게,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13쪽, 1장 ,시대.




역시나 너무나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단.
오늘 날 읽어도 시대에  대입할 수 있는 , 그래서 똑똑한 선택의 명문이다.
번역도 좋다. 

미드 <홈랜드>에서 애정하는 퀸 이라는 남자 캐릭터가 가슴에 품은 이들의 사진을  책에 넣어두고 꺼내보곤 했는데,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홈랜드>를 다 보고나서 이어서 본 미드 <하우스어브카드>에서는 <두 도시 이야기>첫 문단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막장끼 있는 아침 드라마 처럼 팡팡 터지는 사건들과 과거의 비밀들과 진실들이  이야기 되서 재밌게 술술 읽힌다.
이야기의 힘은 있는데, 문장의 힘은 (유명한 첫 문단을 말고는) 잘 모르겠다.
 
안나카레니나를 읽었을 때나 E.M . 포스터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 느꼈던  설렘과  감탄은 없었다.
맘에 안드는(?) 혹은 작가가 애정을 싣지 않은 캐릭터 인 양 묘사가 성의없게 느껴지던 두 주인공.  --루시와 다이네 .
이해는 안되지만 작가가 애정을 잔뜩 품은 게 분명한  카턴.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이"가 바로 카턴이다.
죽음으로써 불멸하게 되는 몰락의 에티카.


그 후
아룬다티 로이의 아름답고 슬픈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휴고>에서 
두 도시 이야기를 또 만나게 되었다.




카턴

" 기력은 모두 소진되었고 사방은 황량했다. 남자는 조용한 언덕을 가로질러 가만히 멈춰 서 있다 문득 앞에 펼쳐진 황무지에서 명예에 대한  야망과 자기부정, 불굴의 의지 같은 신기루를 보았다. 그 공평한 도시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신중한 사람들이 그를 올려다보는 상상 속의 화랑이 있고, 탐스럽게 익은 삶의 열매가 열린 밭이 있고, 눈을 반짝이게 하는 희망의 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 환상은 사라져버렸다. 그느 즐비한 집들 중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옷도 벗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헛된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햇빛이 비친 광경에서 무엇이 그 남자의 일생보다 더 슬프겠는가. 뛰어난 능력과 선량한 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며, 자신을 파먹는 해충인지 알면서도 그 해충이 자신을 먹어치우도록 보고만 있는 남자였다."
-133쪽.5장 자칼.



"그것은 대저택의 석벽에 얼굴 석상이 하나 더 늘어날 전조였다. 고르곤은 밤사이에 건물을 찬찬히 살핀 다음 비었던 얼굴 하나를 더 채워 넣었다. 그것은 거의 이백 년 동안 기다려온 얼굴 석상이었다. 
 그것은 후작 나리의 베개 뒤편에 놓여 있었다. 놀랐다가 화를 낸 상태에서 굳어져 버린 잘 만든 가면 같은 얼굴이었다. 그 돌로 된 사람의 심장에는 칼 한자루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칼자루 둘레에는 이렇게 갈겨쓴 종이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이자를 무덤으로 모셔라. 자크로부터."
-185쪽, 9장 고르곤의 머리.



루시
"잘됐군요. 루시 양이 유독 선생님을 따르고 의지하니까요. 그녀는 요즘 어떤가요?"
"걱정도 많고 수심에 싸여 있지만 늘 그렇듯 아름다워요."
-445쪽, 9장 시작된 게임.


드파르주 부인

"당시에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무시무시하고 흉측한 손이 닿지 않은 여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이 무자비한 여자보다 더 무서운 여자도 없었다. 강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에 예민한 감각과 준비성, 강한 결단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결의와 증오심의 소유자임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도  직감하게 만드는 일종이 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려운 시대가 그녀를 높이 끌어올려 주었으리라. 어린 시절 키운 악에 대한 감각과 어떤 계급에 대한 만성적인 증오심이 그녀를 암호랑이로 키웠다. 그녀는 동정이라고는 모르는 여자였다. 혹시 내면에 미덕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무고한 젊은이가 선대의 죄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에게는 젊은이가 아니라 그 조상들이 보였다. 그녀에게는 그 젊은이의 아내가 과부가 되고, 딸이 고아가 된다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것도성에 차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의 천적이자 먹잇감이며, 살 가치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애원해 봤자 소용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에게도 동정심을 갖는 여자가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전투에서 싸우다 쓰러진다 해도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설령 내일 기요틴에 목을 내놓고 죽어야 한다고 해도 자신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사람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여자 였다.
 드파르주 부인은 거친 옷 속에 그런 감정을 품고 다녔다. 대충 걸쳐 입어도 기묘하게 옷이 되었고, 검은 머리카락은 어설픈 붉은 색 모자 아래에서 더욱 풍성해 보였다. 품 안에는 총알이 장전된 권총이 숨겨져 있었다. 허리춤에는 날카로운 단도를 보이지 않게 차고 있었다.  그렇게 무장을 한 채 종종 맨발에 맨다리로 갈색 모래사장을 걷던 소녀 시절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522쪽, 14장, 뜨개질은 끝나고

멍청한 질문 벼룩 간이 배 밖에 나온 날

"제가 멍청한 가요?"
"음..."

그녀의 눈을 한 3초정도 응시한다. 
그녀의 질문에 순간 솔직하게 대답할 뻔 하다가 솔직하게 말할까요? 정직하게 말할까요? 고민하다가 용케 (지금생각하면 참 잘한)답을 피한다.
"D씨는 관심있는 부분만 보고, 그 밖엔 시선을 두지 않아요. 그 외에는 무관심한거죠.  그걸 멍청하다고 볼 순 없다고 봐요."
그녀의 표정에서 안도하는 인상을 받는다. 
그녀는 곧잘 엉뚱한 질문을 하는데, 사실 궁금해서가 아니라 확인받고 싶을 때 그러하다.
본인이 멍청하지않다는 답을 듣고싶은거다.
나의 클라이언트에게 멍청하다고 답할 순 없잖은가.

솔직히말해서 그녀는 백치미가 있다. 가끔 그녀가 그걸 설정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는 고학력자이고, 좋은 학교를 나왔다. 그러니까 배울만큼 배웠고,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다만, 세상돌아가는데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니 잘 알지 못하고, 그걸 우리는 무지하다라고 한다.
 그녀는 '알지못하는 것'과 '알지않는것'을 엄청난 차이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아니면 
'모르는게 약' 인것과 '아는 것이 힘' 인것 사이에서 약을 먹기로 한 걸까.


예전에 친구로부터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자타공인 센서티브한 성격인데, 눈치가 없다라니....충격적이었다. 얼마나 스스로를 오해하고 있는가.
눈치를 안보다 보니 어느새 눈치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데, 스스로는 여전히 내가 눈치를 안보는 거라는 착각.

그러면서도 타인을 엄청 의식한다.



멍청한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걸 보니 멍청한 구석이 있긴 있네요."라고 대답하지 않은 건 클라이언트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차라리, 
나도 어리석은 사람인데, 그걸 물으면 어떻해요? 라고 할것을 그랬다.



나이도 늘고, 말도 늘었다.
말이 많아지니 말실수도 많다.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기는  얼마나 힘이 드는가.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한 자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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